이번주 초반, 몇년만에 진짜로 불같이 화를 냈다. 소개팅 때문이었다.

지지난주 중반쯤, 친구와 친한 회사 동료의 후배를 소개받았다. 지난 화요일에 서로 만나기로 하고 나머지 사항은 전날 다시 연락하기로 했다. 그러고 난 지난 월요일, 갑자기 회식이 잡혔다며 화요일 저녁을 비우라는 통보가 내려왔다. 약속 미루는건 안좋은데... 하는 생각을 하며 그날 오전 11시쯤에 약속을 미뤄야 할 것 같다, 3월 1일이나 3월 3일에 어떠냐는 문자를 보냈다. 나름 미안한 마음을 담아.

하지만 저녁이 되도록 여자쪽에서는 아무 말이 없는 상황... 느낌이 그랬다. 만나는게 싫은 사람은 약속을 잡을때 질질 끌곤 한다. 50%쯤 만남의 가능성을 포기하고 오후 8시반쯤 전화를 했다. 하지만 여자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약간 짜증이 났다. 그래도 바빠서 전화를 못받을 수 있다는 속설을 받아들이며 9시에 다시 전화를 시도했다. 이번엔 통화중이었다. 10분후 다시 전화를 했지만... 여자는 통화 거절버튼을 눌렀다.

여기서 난 폭발했다. 그동안 소개팅에서 갖은 일을 다 당했지만 그냥 참고 또 참았다. 여자가 깽판을 쳐도 약속을 펑크내도 주선자가 니 탓이라며 뭐라 할때도 참았다. 하지만 그 순간 이번에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남자가 몇번 전화하더니 그냥 슬그머니 연락 안왔다고 주선자한테 말할게 뻔했고, 그럼 친구는 나한테 사람이 왤케 적극적이지 못하냐, 그래서 니가 안된다는 둥 스토리가 보였다.

당시 약간 제정신도 아니었고, 어차피 만나는건 글렀으니 전화 받을때까지 전화해서 얘기나 들어보자 싶었다. 집에 가면서 전화를 계속 했다. 음성 사서함으로 넘어가면 끊고 또 걸고 또 걸었다. 한 6번쯤 걸었는데도 여자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진짜 머리끝까지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결국 친구한테 전화를 했다. 연애도 못하는게 서러운데 이런 수모까지 당해야 하냐며 20년 친구한테 처음 화를 냈다. 저쪽 주선자한테 얘길 해서 당장 사과전화를 안하면 가만 안놔두겠다고 난리를 쳤다.

친구는 적지 않게 놀란 분위기였다. 부랴부랴 다음날 상황을 파악해서 연락이 왔다. 회식이라 전화를 못받았네 어쩌네 하는 얘기가 나왔다. 나는 직접 얘기를 듣고 싶었다. 왜 소개팅 전날 나의 연락을 피했는지. 전화 한통과 공개된 카톡 사진 말고는 정보가 없었는데, 먼저 소개팅을 시켜달라 해놓고는 발뺌인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직접 연락하지 않으면 전화 올때까지 주선자들이 고달플거라며 강하게 나왔다.

그러나 여자는 내가 10번 가까이 전화를 한게 무서워 다시 연락을 못하겠단다. 아니, 그게 무서우면 왜 약속 직전에 연락을 안받는지... 더한 일 당할지도 모른다는건 생각 안해봤나? 하여튼 이틀이 지나도록 여자는 무반응이었다. 나는 마지막 카드로 4자대면을 꺼냈다. 주선자들은 거의 패닉상태. 스마트폰 사고 제일 긴 카톡 메시지를 받아봤다. 구구절절 자신의 입장도 난처함을 설명한 내용...

사실 4자대면 카드를 꺼내면서 친구가 괴로워 하는듯 했다. 그래서 오늘까지만 이 지랄하고 그만하려고 했는데 친구의 메시지를 보며 더이상 했다간 우정마저 금갈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러고 사는 나 생각해주는 거의 유일한 놈인데... 정리하기로 했다. 친구와 전화를 하고, 여자 주선자와도 통화를 해서 앞의 이야기를 해주고 불편하게 해서 미안하단 얘기도 했다. 결국 소개팅 60여회 역사중 처음으로 진상까지 부려본 셈이 됐다.

지난번에 소개팅 하기전, 아니 주선 단계에서 사진을 봐야 한다고 했었다. 이번에 난 사진을 봤지만 여자는 사진을 못봤다. 전화를 하고 나서 카톡 등록이 됐다 사라졌다. 보고 아니었단 생각을 했나보다. 그러던 중 약속을 미루자니 나름 안심이었을수도 있고... 그래서 다른 날 약속을 잡잔 말에 무응답으로 일관했을지도 모른다.

소개팅... 연락처 받고 안만날 수도 있다. 그럼 솔직하게 얘기하자. 욕먹기가 두렵다고? 그렇다면 나와서 기분나쁘지 않게 식사라도, 아니 차 한잔이라도 하고 들어가자. 이렇게 어물렁 뭉개면 무사히 넘어갈 것 같은가? 얼굴도 한번 못본 사람에게 예의가 아니다. 그렇게 숨겨진 뜻까지 이해할만큼 사람들은 똑똑하지 않다.

소개팅이 선과 다르게 가볍고 부담없게 느껴지는 자리라고도 하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만남은 신중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소개팅을 시켜달라 하기 전, 연락처를 받고 나서 마음의 준비를 할때 다시한번 잘 생각해보자. 그리고 내키지 않는 것이라면 예의바르게 거절하자. 그게 서로 기분나쁘지 않게, 찝찝하지 않게 끝나는 길일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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