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진은 포스트 내 특정 사실과 관계없음을 밝힙니다)

어제(10일) 나는 꼼수다 봉주 5회가 올라왔다. 이전에도 한번 언급했던, 정말 지겹기도 지저분하기도 할 정도로 심한 논란을 빚은 '비키니 응원' 에 대한 나는 꼼수다 3인방의 입장표명이 있었다. 지난번 시사in 토크콘서트에서 이야기 했던 내용들이 대부분 방송을 탔다. 그때는 메모나 녹음을 할 수 없어서 기억나는 내용만을 적었고, 오늘은 제대로 이 내용을 다시한번 정리해 보고 이와 관련된 나머지 이야기들도 해보고 싶다.

먼저 방송 내용에 대한 정리.

1. 왜 이 사건이 일파만파 퍼지는 동안 열흘 가까이 아무런 입장표명도 없었나?

모든 논란에는 기승전결이 있다. 나올 수 있는 모든 이야기가 다 나와야 본질이 무엇인지, 누가 무슨 속셈을 갖고 있는 것인지, 논란의 수준은 어떻고 바닥은 어디까지인지를 알 수 있다. 당장 오해를 받더라도 기다려야 한다고 봤다.

2. 이 사건의 정확한 사실관계는?

정봉주 의원 수감 직전에 이런 저런 농담을 방송에서 하면서 편지 위원회를 만들고 분과에 수영복 사진 분과를 넣어 남자가 수영복 입은 사진을 보내라! 하고 김어준이 농담을 했었다. 하지만 실제 그런걸 만들지는 않았다.

정봉주 의원이 교도소에 들어가고 정봉주 구명운동 사이트가 만들어진 후 방송을 통해 응원의 1인시위 인증샷을 올려달라고 했다. 얼마 되지 않아 비키니를 입은 여성이 사진을 올렸다. 그 사진을 보고나서 생물학적으로 '우와~' 하며 몸매에 대해 칭찬을 하는 반응을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생각과 동시에 '이제 우리나라에서 이런 식의 시위와 응원이 가능하구나.' 라는데 대한 감탄과 동지의식을 느꼈다.

비키니 사진이 올라온 후에 정봉주 의원 면회를 갔다. 면회전 접견인서신이라는 것을 쓴다. 이걸 써놓으면 정봉주 의원이 우리가 돌아간 후에 내용을 보게 된다. 그런데 이 서신이 청와대에 내용이 보고된다. 그래서 청와대에 있는, 서신을 보는 인간들 엿 먹으라고 자극적인 멘트를 쓰곤 한다. 사람들이 궁금해 하기에 트위터로 공개하는 것 뿐이다. 일반인을 타겟으로 한 것이 아니다. 마침 비키니 사진이 올라오고 해서 문제가 된 '코피 팍~' 이라던지 '이대, 숙대' 가 들어간 서신을 작성했다. 이것은 주진우가 썼다.

그리고 방송을 통해서 '정봉주 의원이 성욕감퇴제를 복용하고 있다.' 는 내용이 나갔다. 정봉주 의원은 성욕감퇴제를 먹지 않지만, 복용하는 약 중에 그와 비슷한 성분이 있어서 그걸 모티브로 김용민의 목소리를 빌어 방송에 냈다. 하지만 이 모든 사건은 김어준이 시켰다. 이들은 그냥 시킨대로 했을뿐 죄가 없다. 정봉주 의원 수감후 성적코드가 강화된 것은 전적으로 김어준 생각이다.

3. 이 사건이 성희롱이란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성희롱이 아니다. 성희롱은 피해자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가해자가 의도가 없어도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끼면 성희롱이다. 그리고 성적 수치심에 대한 정당한 항의를 할 수 없는 불평등한 권력관계가 존재할때 성희롱이 성립한다. 이것이 기본 전제다.

우리와 비키니녀 사이에는 권력관계가 없다. 그리고 이 분은 자발적 의사로 사진을 올렸다. 우리가 올리라고 해서 올린게 아니다. 게다가 논란이 일어난 후에 나의 의미를 폄훼하는 논쟁이 일어난 것이 심히 불쾌하다는 의사표현을 했다. 당사자끼리는 이렇게 결론이 났다.

남은건 구경꾼이다. 제3자는 나서지 말라고 할수도 있지만 이런 이슈에 대해 여성은 남성보다 예민할 권리가 있다. 여성이 그동안 사회적 약자였고 남자들이 잘못해온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의 몸을 정치적 의사에 활용할지는 본인의 고유 권한이다. 자신이 불쾌함을 느꼈다고 해서 여성의 자발적 의사를 통제할 수는 없다.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며 여성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방법은 보수적으로 다루는 것은 과거 피해자 관점에서의 페미니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4. 이 사건을 보며 들었던 아쉬움은?

논란이 일어나는 걸 지켜보며 좀더 발전적인 논의가 있을줄로 알았다. 하지만 과거지향적인 페미니즘과 우리를 마초나 쇼비니스트로 취급하는 낡은 프레임에 갇혀있단 것이 아쉬웠다. 그리고 이 사건에만 집착해 나꼼수가 줄기차게 의혹을 제기한 선관위 사이트 불통사건 등과 같은 중요한 문제는 언론이 외면하고 모두 전화를 해서 '사과 할거냐 말거냐' 만 도통 묻는게 답답했다.

그리고 기사를 쓰려면 조사를 좀 하고 방송도 들었으면 한다. 주진우 기자는 그동안 많은 여성문제 해결을 위해 애썼고, 실제 생활도 여성을 존중한다. 김용민도 도사같다. 그런데 이들의 실제 캐릭터에 대한 연구는 없고 잘못된 정보로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그를 공격하다니. 섀도우 복싱이 따로 없다. 그리고 질문하는 기자들, 방송 들어본 사람 거의 없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한다는게 가능한가?

5. 이 사건의 논란을 이쯤에서 공개하게 된 이유는?

더 묵혀두고 싶은 맘이 간절했으나, 최근 여권에서 주진우 기자를 공격하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더 놔뒀다가 주진우도 정봉주처럼 잡혀갈거 같아서 이쯤에서 사실을 공개하고 앞에 놓인 다른 장벽에 맞서기로 했다.


이렇게 공식입장이 나와서 그런가. 와글거리던 인터넷 분위기가 한층 잦아든 느낌이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열받았던 것은 첫째, 정확한 사실관계 파악을 안하고 너도나도 논쟁에 뛰어들었단 것이다. 각종 나꼼수 비난 여론에 반응조차 하기 싫었던건 이들이 잘못된 정보에 의한 판단을 하고 있고, 그 잘못된 정보에 대한 개선의지가 없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최소 제대로 까려면 방송을 들어보고 깠어야 하는것 아닌가? 팩트도 없이 어떻게 가치판단이 가능하단 말인가?

둘째, 여성들의 지나친 피해의식이다. 물론 아직도 여러 부문에서 여자들이 남자들에 비해 불리하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여자가 남자보다 대우받는 부분도 있고 동등하게 대접받는 부분도 있다. 남녀차별 발언 잘못하면 매장당하는 이 세상, 그만큼 우리 여성들의 힘이 세졌다. 그렇다면 당당해져도 된다. 그런데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이런 부분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남자가 강해 보이는가? 강해 보이는 사람이 죽자고 달려들면 약해진다. 여자들도 그렇게 나오면 남자 이길 수 있다. 좀더 당당해져보자.

셋째, 공지영의 트위터다. 이분 좋은 소설도 많이 쓰고 의식도 있다. 하지만 트위터에서 이것을 너무 자극적으로 끌고 갔다. 나를 포함해 팔로워가 대체 몇명인가. 그냥 내 트위터처럼 개인소사를 끄적이고 말 공간이 아니다. 좀더 신중했어야 한다. 그가 나꼼수 콘서트 게스트도 나오고 개인적으로 친분도 있다면 사전에 왜 이런 얘기를 하는지 물어보기라도 했어야 하는거 아닌가? 이런거 물어볼 사이는 되는거 같은데 그런 트윗이 올라오니 사람들이 의혹을 갖고 안티 세력에게는 먹잇감을 제공하게 됐던 것이다. 안그래도 다른 사건으로도 구설수에 많이 오르는데... 소설과 다르게 탈고를 안하셔서 그런건가... 지금 트위터 안하고 계시던데 좀더 신중한 활동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 주문을 해본다.


어쨌든 사건은 슬슬 마무리 분위기인듯 하다. 더 이걸 물고 늘어지면 찌질해 보인다. 하지만 여성인권이나 페미니즘의 정의, 우리 사회의 성의식 등 김어준이 한번 불붙여보고자 했던 주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는 이 주제를 딴지일보를 10여년 하면서 계속 전면에 내세울려고 했다. 여기에 관한 건전한 토론과 의식변화도 많이 일어났으면 한다.
 
오늘 통합진보당의 팟캐스트 '노회찬 유시민의 저공비행' 4회가 업로드 됐다. '새누리당' 으로 당명을 바꾼 한나라당의 실체를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어렸을때부터 옆에 앉혀놓고 신문을 보게한 아버지 덕에 어느정도 이 역사를 남들에 비해서는 잘 아는 편인듯 하다. 하지만 블로그 유입경로를 보니 저공비행을 많이 검색하고 계셔서 그분들께 도움을 드리고, 나도 한번 이 수꼴정당의 역사를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 방송내용과 기타 정보 등을 종합해 집단의 발자취를 다뤄보기로 했다.

1.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약칭 국보위)


1979년 12.12 사태로 박정희 사후 혼란했던 한국사회를 장악한 신군부세력은 정권을 차지하기 위해 1980년 5월 27일 국보위를 출범시켰다. 비상계엄령 확대, 국회 해산, 비상기구 설치라는 신군부 3대 과제 중 하나가 바로 이 국보위. 허수아비 대통령 최규하가 의장이었고 실질적인 업무를 담당한 상임위원회 의장이 바로 당시 보안사령관 겸 중앙정보부장 서리였던 전두환이었다.

상임위원회는 총 30명이었는데 군 장성이 18명이었다. 국가안보 강화, 사회정의 구현, 정치/경제 발전을 명목으로 이들은 수많은 만행을 저질렀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정치인 활동규제. 당시 거물급 정치인이던 김영삼의 강제 정계은퇴,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조작, 김종필의 부정축재자 낙인찍기 등을 비롯, 수많은 정치인들을 자기 멋대로 활동규제 대상에 올려 정치적 자유를 억압했다.

이에 버금가는 것이 바로 언론통폐합. 이미 언론사마다 군인을 파견해 기사를 검열하던 신군부는 더욱 효율적인 통제방법으로 언론사의 통폐합을 실시했다. 이로 인해 동양방송(TBC)과 동아방송(DBS)가 KBS에 합병됐고, 동양/합동통신사가 연합통신이 됐으며 MBC는 KBS에 65%의 주식을 강제 양도하며 졸지에 민영방송에서 공영방송으로 변신했다. 국민의 눈과 귀는 꽁꽁 막히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국보위의 대표적인 만행으로 꼽히는 것이 삼청교육대. 전과자 및 조직폭력배의 사회갱생이 목표였다지만 숫자 채우기라는 이름 아래 무고한 시민들이 이유없이 잡혀가 온갖 가혹행위를 당했다. 400여명의 사람들이 사망했고, 30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상해를 입은 일제시대에나 있을법한 사건이었다.

2. 민주정의당


국보위로 정권의 기반을 닦은 전두환은 1981년 1월 15일 민주정의당을 창당했다. 여기서 전두환은 민정당의 12대 대통령후보로 지명받았고 2월 25일 대통령선거인단의 '체육관 선거' 에 의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국보위 주축 멤버들이 그대로 민정당에 옮겨와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아시안게임 및 올림픽 유치, 3저 호황을 근거로 겉보기엔 태평성대를 누리는 듯 했지만 점점 달아오르는 국민들의 민주화 열기를 지속적으로 탄압했고, 기업들에게 정치자금을 강제로 징수했으며 이에 반발하는 국제그룹을 공중분해시키기도 했다. 무엇보다 위원회에서 당으로 형태만 바뀌었을뿐, 정당성 없이 군부 쿠데타로 정권을 차지한 불법집단이나 다름없었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위기에 직면했으나, 재빠르게 직선제 개헌안을 들고 나왔고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며 생명력을 유지하였다. 하지만 1988년 13대 총선에서 과반수 확보에 실패하며 특단의 조치를 내리게 된다.

3. 민주자유당


13대 총선 패배로 위기에 빠진 민정당은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해 의석수 늘리기를 시도한다. 그리고 5공비리로 만신창이가 된 전두환의 잔재를 청산할 필요도 느꼈다. 노태우 대통령은 이런 국면의 탈출을 위해 김대중을 넘어 대통령이 되고 싶은 김영삼, 독자적으로 대권획득이 어려워 내각제를 주장하던 김종필과 야합해 1990년 2월 민주자유당을 창당했다.

5공비리의 실체가 드러났고 13대 총선으로 생명력에 위협을 받던 국보위-민정당 계열 정치인들이 살아남기 위한 방법으로 이렇게 합당과 당명 변경으로 물타기를 시도한 것. 정치민주화는 사실상 중단됐으며 구태 정치인의 득세와 지역감정 조장이라는 악습이 계속되는, 한국 현대정치사 최악의 사건, 최악의 정당이 바로 민자당이다.

4. 신한국당


1992년 김영삼은 거대여당을 등에 업고 대통령에 당선된다. 정권 초반 금융실명제 실시와 하나회 해체 등으로 국민들의 지지를 얻던 김영삼은 정적 김대중의 정계복귀와 1995년 지방선거 패배로 위기에 빠진다. 그리고 내각제를 주장하던 김종필이 민자당을 탈당해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해 아군의 일부를 잃었다. 그리고 1995년 들어 12.12 사태 등 과거 신군부 세력의 만행에 대한 진상조사가 실시되며 과거 세력과의 결별이 필요했다.

이에따라 김영삼은 민자당에서 민정계와 공화계를 모두 퇴출시키고 이회창, 박찬종, 김문수, 이재오, 정의화 등의 신진세력을 영입하며 당명을 신한국당으로 변경했다. 덕택에 신한국당은 1996년 15대 총선에서 139석으로 제1당이 됐고, 이후 자민련과 민주당 소속의원을 영입해 과반수 의석을 확보했다.

5. 한나라당


신한국당의 전성기는 얼마가지 못했다. 김영삼 정권 말기, 아들 김현철의 권력형 비리가 터지며 도덕성에 상처를 입었고 이후 경제식민지 전락의 계기가 된 1997년의 IMF 경제위기를 자초하고 말았다. 이에 당시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 이회창은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에 합류하지 않고 있던 민주당 일부 세력을 영입하여 한나라당을 창당하고 김영삼의 잔재를 털어내려 했다. 이때가 1997년 11월, 대통령선거 한달 전이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대선에서 DJP 연합에 패해 야당이 됐다. 이후 2002년 대선에서도 이회창이 재출마했으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노무현에 패해 다시 야당이 되었다.

한나라당은 2003년 16대 대선기간동안 대기업으로부터 무려 800억원의 정치자금을 수수한 '차떼기 사건' 으로 파문을 일으켰고, 무리한 노무현 대통령 탄핵시도로 국민의 마음을 잃었다. 하지만 천막당사를 내세운 박근혜의 구원등판으로 2004년 17대 총선에서 121석을 얻어 기사회생했다. 이후 조중동을 비롯한 수구 언론의 여론몰이와 노무현 정권의 실정을 틈타 2007년 이명박이라는 희대의 괴물을 대통령으로 당선시켜 10년만에 여당의 위치를 되찾는다.

하지만 곧바로 찾아온 글로벌 금융위기와 꾸준히 제기되어오던 이명박 정권의 무리한 토목사업, 언론 및 인권 탄압, 영일대군 이상득과 이명박 측근을 중심으로 한 각종 비리, 대권에 욕심내다 한나라당 전체에 '빅엿' 을 안긴 오세훈의 서울시장 사퇴 등으로 차기 대권 수성이 어려워졌다. 이에 홍준표 대표를 사퇴시키고 박근혜를 중심으로 한 비상대책위원회가 발족했으며 쇄신을 위해 당명을 '새누리당' 으로 바꾸기로 결정, 15년 가까운 역사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30년전부터 거슬러 오르면 국보위부터 새누리당까지의 유사한 행동패턴이 있다.

1. 정권 획득 및 유지를 위하여 당명 개정, 조직의 합병 등을 실시했다.
2. 인권을 탄압하고 언론을 정치적으로 활용했다.
3. 자신의 권력유지에 방해가 되는 세력을 몰아내는 척 하고 당명을 바꿔 눈속임을 했다.
4. 거액의 정치자금 수수, 각종 뇌물수뢰 등 '돈맛' 에 빠진 정치행태를 계속 보여주고 있다.

이 수구꼴통의 역사를 보며 여기서 나갈 놈은 나갔는데 뭐가 문제냐고 항변하는 새누리당 지지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신세력의 대표주자 박근혜가 1997년 한나라당 창당과 함께 입당했고 2006년 김종필의 자민련 세력이 한나라당에 흡수됐다. 2003년 한나라당 대표 최병렬은 12대 민정당 의원이었고 신한국당 창당시 실세였던 김윤환 역시 민정계였다.

결국 왔다갔다하고 당명을 바꾸며 사람들의 눈길을 피했을뿐, 이들은 여전히 30여년째 국보위를 뿌리로 하고 있는 세력이다. 여기에 박정희 군부독재 세력까지 합류한 그야말로 대한민국 역사를 몇십년 후퇴시킨 장본인들의 집합체다. 쇄신, 국민을 위한 정치 이런 것에 속지 말자. 민정당때부터 보던 단골메뉴다. 최소 새누리당을 지지할 의시가 있더라도 분명 객관적으로 문제가 있는 정권을 뿌리로 한 이 조직이 과연 그 잔재를 확실히 벗어던지는지를 비판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

아직도 내 입맞에 맞는 정치세력 찾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선거에서는 누군가를 선택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그 실체와 뿌리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잘생겼고, 유명하다 해서 무비판적으로 수구 세력 정당의 후보를 뽑는다면 우리 생활은 나아질 수 없다. 아는 것이 힘이다. 이 허접한 정리가 많은 사람들의 정당 선택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정치] 안철수, 나오긴 나옵니까?

잡설 | 2012. 2. 7. 22:41
Posted by 베이(BAY)


어제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이슈 털어주는 남자' 가 안철수의 정치 행보에 대한 방송을 했다. 작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계기로 백신 전도사, 도덕적 기업인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세상을 바꾸는 정치에 대한 야심을 드러낸 안철수는 서울시장에서 자기가 양보한 박원순이 당선되며 졸지에 거물 정치인이 됐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세 박근혜를 제치며 '나오면 당선' 이라는 수준에까지 오르게 됐다.

하지만 총선이 2개월, 대선이 10개월 남은 상황에서 안철수는 정치권 진출에 대한 확답을 하지 않고 있다. 온갖 추측만이 나돌뿐이다. 이렇게 안철수가 확실한 의사표명을 하고 있지 않은 사이에 박근혜도 아닌 문재인이라는 다크호스가 그를 위협하고 있다. 최근에는 문재인이 안철수를 제친 여론조사도 나오고 있다.

일단 여러가지 정황을 보면 안철수는 정치를 할 생각이 있는듯 하다. 총선은 이미 늦었으니 안된다고 본다면 대선 생각은 있다. 그렇다면 뭔가 신호를 보내야 하는데 너무 망설인다는 느낌이다. 개인적으로 이것이 안철수에겐 좋지 않아 보인다.

정치인으로 나서서 재테크를 하시는 MB나 영일대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대의민주주의의 현장에 나가는 정치인은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개인 사생활까지 탈탈 털려도 보고, 사돈의 팔촌까지 감시당하고, 어디가서 말 한마디,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조심해야 하고, 두려움을 무릅쓰고 싸우고 소리지르고 해야하는 등 본분에 충실하다면 아무나 할 수 없는게 정치다. 그리고 내가 아닌, 국민을 위해 일하는 모습에 사람들은 감동받는다. 그렇기에 정치인에게 '희생' 이란 덕목은 중요하다.

하지만 자꾸 타이밍만을 보는 안철수는 이런 희생정신과 거리가 멀어보인다. 물론 사랑도 정치도 타이밍이 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알게 모르게 다 밝혔다. 사람들도 다 안다. 강용석처럼 열심히 벌써 '정치인 안철수 검증' 을 하는 사람도 있다. 홍준표의 말을 빌리자면 안철수는 '사실상 정치인' 이다.

이렇게 약아빠진 모습을 계속 보이는 것은 그에게 좋지 않다. 결국 이것은 국민을 행복하게 하기 위한 행동이 아닌, 정치 권력이라는 그의 목적 달성을 위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안철수가 좋은 이미지를 계속 유지하기 때문에 상관없지만, 자꾸 이러면 사람들도 지친다. 박근혜처럼 단숨에 대세론을 뺏길 가능성도 있다. 지금 우직하게 힘든 길을 가고 있는 문재인과도 비교된다.

만약 안철수가 2012년 정치판에 등장하려 한다면 빠른 시일내에 정계 진출을 선언해야 한다. 2010년부터 고민했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준비가 전혀 안된 것도 아닐 것이다. 어차피 할거라면 지금 나서라. 계속된 자기보호본능은 필요없다. 자기 밑그림대로 정치를 움직일려면 아직 자리잡지 않은 민주통합당의 현재 판세를 파고 들어야 한다. 판세가 굳힌 다음에 들어가서 바꾸려면 어렵다. 본인이 삼고초려의 제갈량이라고 착각하지 말아라. 자기 밥그릇은 자기가 챙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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